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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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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이야기

막걸리 이야기

 

막걸리의 재미있는 이야기 모음입니다.

막걸리 사진
 

조상들이 즐겼던 우리의 술

단군께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셨다. 가을에 신곡이 수확되면 높은 산에 올라가 여러 신께 제사를 지냈다. 제사에는 신곡으로 만든 떡과 술, 그리고 소를 잡아서 제단에 올렸다고 한다. 그중에 햇곡으로 빚은 제주를 신농주(神農酒)라 일컬었다 한다. 이 술은 현재 막걸리와 같은 것이며 오늘날 농촌에서 막걸리를 농주라 하는 것도 이 신농주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막걸리를 달리 모주라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담겨 있다. 조선조 광해군 5년(1613)6월, 소북파와 대북파간의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으로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생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고 친정어머니 부부인(府夫人) 노씨는 제주도에 유배됐다. 하루아침에 유배인 신분으로 내몰린 부부인을 봉양하기 위해 시녀는 술지게미를 재탕한 막걸리를 내다 팔았다. 그 소문이 돌자 지역 주민들이 줄을 서서 사 마셨다. 나중에 부부인이 복권된 뒤 그곳 사람들은 부부인을 기려 그 막걸리를 모주라고 불렀으니, ‘국모(國母)의 술’이란 뜻이다.
 

막걸리 5德

막걸리는 다섯 가지 덕, 즉 ‘오덕(五德)’으로 예찬 받는다. 허기를 면하게 해주니 일덕이요, 취기를 심하지 않게 하니 이덕이며, 추위를 덜어주니 삼덕이다. 게다가 힘들지 않게 일하라고 기운을 북돋워 주고, 용기가 없어 평소에 못하던 말을 하게 하여 의사를 소통시켜 주니 사덕과 오덕이다. 특히 ‘잘살기운동’을 벌이던 시절의 막걸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농사일이 한가한 겨울철을 이용해 마을 안길을 넓히고 농로를 확장하는 일은 마을의 공동 작업이었다. 가가호호 한두 사람씩 나와 리어카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작업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막걸리의 힘이 있었다. 양조장에서 배달해온 두말들이 술통을 둘러싸고 서서 한잔씩 기울이는 막걸리야말로 ‘오덕’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지금 막걸리 인기가 가위 천정부지다.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양조 기술이 좋아져 많이 마셔도 두통이 없어서인지 너도나도 막걸리를 찾는다. 수요자가 늘면 공급자도 늘게 마련. 식당과 동네 가게뿐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판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과 떫은맛에다 신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루고,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난다. 그 막걸리가 ‘저탄소 친환경상’을 받는다니 오덕에다 덕을 하나 더 보태 육덕이 됐다.
 

막걸리는 왜 좋은가, 5가지 덕, ‘오덕(五德)’ 덕분이다.

  • 1. 많이 마셔도 정신나갈 정도로 취하지는 않는다.
  • 2. 출출할 때 마시면 요기가 된다.
  • 3. 힘 빠졌을 때 마시면 기운이 난다.
  • 4. 마시면서 웃으면 어려운 일도 풀린다.
  • 5. 여럿이 마시면 묵었던 앙금이 가라앉는다.

막걸리는 이래서 좋은 술이다. 특히, 막걸리는 ‘엄청’ 퍼마셔도 몸을 망치는 일은 없다. 알맞게 마시면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 옛날에는 막걸리를 달여서 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영양이 풍부하다. 값싸게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는 술이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막걸리 한 대접 마시고 무거운 짐도 너끈하게 짊어졌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는 더 있다. 막걸리의 ‘삼반(三反)’이다.

  • 1. 반유한적(反有閑的)이다. 막걸리는 농사짓고, 일하는 사람이 마시는 술이다. 놀고 먹는 사람이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을 하게 되며 숙취를 일으킬 수 있다.
  • 2. 반귀족적(反貴族的)이다. ‘강화도령’ 철종 임금은 온갖 귀한 술을 입에 맞지 않는다며 내치고 막걸리만 찾았다. 막걸리는 서민 술이다.
  • 3. 반계급적(反階級的)이다. 잔칫날 막걸리 파티가 열리면 온 마을 사람이 돌아가며 마셨다. 막걸리는 평등의 술, 화합의 술이다.
 

일본에서 주신으로 모셔졌던 백제시대 사람 인번(仁番)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상은(李商隱)같은 사람도 신라주를 찬양하는 시를 읊었다고 하니 이미 삼국시대에 곡식을 가지고 만든 곡주인 막걸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고사기(古史記)에 보면 응신천황(應神天皇,AD27~312)때 백제의 인번이란 사람이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를 빚었기 때문에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한다.